[제작문화에 관한] 알렉스 갤러웨이 인터뷰

Alex Gallaway. 2012. “Alex Gallaway – interview by Garnet Hertz.” Garnet Hertz ed. Critical Making. CONVERSATIONS.

번역
4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 만들자 마라톤을 위한 읽기꾸러미 (2013.11.01) http://apap.or.kr/making_marathon
기획: 만들자연구실 디렉터 최태윤, 공원도서관 디렉터 길예경
편집: 길예경, 최태윤
옮김: 김정은

<프로토콜>, <인터페이스 이펙트> 등의 저자이자 소프트웨어 아트 작업을 해온 알렉스 갤러웨이는 인터뷰를 통해 만들기 문화에 대한 비평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만들기 운동 안에는 창작을 욕망하는 개인들과 프로컨슈머(혹은 ‘만들 수밖에 없는 소비자‘)가 공존한다. 갤러웨이는 이같은 이중성과 오픈 소스를 표방한 신자유주의화를 양날의 검으로 표현하며 비평을 위한 개념적 장치를 제시한다.(최태윤)

 

알렉스 갤러웨이 인터뷰

인터뷰어: 가넷 허츠 Garnet Hertz
인터뷰 날짜: 2012 년 7 월 6 일.
편집: 제시카 카오 Jessica Kao
녹취. 가넷 허츠 Garnet Hertz, 알렉스 갤러웨이 Alex Gallaway, 아멜리아 귀마린 Amelia Guimarin

 

허츠: 당신이 보기에 ‘만들기운동’의 문제점은 무엇인 것 같습니까?

갤러웨이: 만들기운동의 장점은 무수히 많고, 그것에 대해 얘기하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제 입장은 어느 정도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만들기운동은 길이가 굉장히 긴 어떤 문장, 즉 그로 인해 우리의 문화와 기술이 특정한 방식으로 달라졌다 해도 크게 놀랄 일은 아닌 어떤 유구한 흐름의 마지막 마침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더 큰 맥락에서의 변화는 현대 사회가一1970 년대 초반부터라고 해봅시다一변화해온 양상, 개인에게 진정한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기 시작하고, 보다 폭넓은 의미에서 개인을 ‘만드는 자’로 변모시킨 사회 변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기반이 되는 것은 개인이 만들어내는 창작입니다. 자기 표현의 일환으로, 자기 식으로 보여주고, 직접 시연하며, 직접 홍보하는 창작물. 정서, 행동, 행위를 통한 생산품이죠. 우리 모두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만들고 있고, 많은 경제학자들처럼 우리 역시 이것을 새로운 생산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페이스북과 테드 Ted 강연의 폭발적인 확산, 요즘 비디오 게임의 디자인 방식, 심지어 문학계에 회고록이 넘쳐난다는 사실 사이에는 어떤 유사성이 있을까요? 이 모든 현상은 개인의 생산력을 증대하기 위해 힘쓰고 개인의 직접적인 표현 능력을 높이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쏟는, 보다 더 큰 사회적 현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염두에 두면 조안 디디안Joan Didion(미국의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 – 역주)과 디아블로3 를 같은 맥락으로 연결시킬 수 있겠죠. 어쩌면 이 문화에는 우리가 곧 씨름해야 할 새로운 유형의 나르시시즘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가령 페이스북은 일종의 나르시스적인 기계인 것이죠. 우리는 모두 무엇이건 만드는 자입니다. 따라서 만들기운동의 문제점을 평가하고자 한다면 이 하나의 운동만으로 범위를 좁혀서는 안됩니다. 웹 2.0 과 같은 것들에 대해 보다 포괄적으로 생각을 넓혀야지요. 기본적으로 우리는 누구나 만드는 자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만들기운동이 가령 약 100 년 전의 ‘자립가정’ 문화 같은 물질문화에서 보다 유행했던 수공예나 자급자족 트렌드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고 보시나요?

실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정말 부자 나라이지만 동시에 완전히 헐벗은 나라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매우 빈곤하죠. 보다 진정성 있고 진지한 삶의 방식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현재 일어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이런 전환이 주기적으로 발생하지요. 직접 제 손으로 만들어보는 새로운 의미의 진정한 해커 정신도 이런 흐름에 따라 진입한 것입니다. 1980 년대에 펑크톡과 인디 펑크 레이블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을 생각해보세요. 그것 역시 유사한 종류의 본능이었습니다. 오늘날은 모두가 만드는 자이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만들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런 보편성을 인식하고 있습니다만, 우리가 집단성의 가능성을 충족하고 있는지는 잘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저는 DIY 문화의 일부분이ᅵ, 적어도 자급자족적이고 상업문화를 우회하려 한다는 측면에서 약 100 년 전의 흐름과 일맥상통하고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메이크 MAKE> 지를 보면 보통 아두이노로 장치 만들기, LED 키고 끄기, 3D 프린터 사용하기 등을 주로 다릅니다. 어떤 면에서 이는 그저 다른 유형의 소비자를 위한 것 같아 보이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소위 ‘프로컨슈머 Pro-consumer’라는 개념에 흥미를 보입니다. 소비자이면서 생산자이기도 하고, 또 만들 수밖에 없는 소비자를 뜻하지요. 인터뷰어께서 잠깐 언급해주셨듯이, 이는 미국인의 삶이나 상업적인 측면에서 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약 백 년 전만 해도 스티클리 Stickley 같은 가구디자이너는 소비자가 가구를 직접 조립하도록 했습니다. 가구 조립 공정을 소비자에게 아웃소싱한 셈이죠. 더 큰 맥락의 공예운동 역시 지금 말씀하신 DIY 문화와 연결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매우 미국적인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피에는 자립을 강조하는 에머슨 류의 신호 K 프로테스탄트적 윤리, 자본주의 정신 등이 흐르고 있습니다. “혼자 힘으로 우뚝 서서 자급자족해라’ 정신이랄까요. 저는 사실 그 모든 것을 사랑합니다. 저 역시 분명 자립이라는 개념에 매혹되고, 그것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이해할 수 있어요

 

맞습니다. 나탈리 제레미젠코 Natalie Jeremijenko 가 저에게 일깨워준 말이, 오픈소스 라이센스가 ‘비판적이고 의식 있다’라는 개념을 대체 혹은 대신해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자, 여기 내가 만든 장치가 있고 내 도구가 있어. 이것은 오픈소스인데, 이 말인 즉슨 나는 문화를 비판적으로 향유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지”라고 말한다는 것이죠. 오픈소스 하드웨어 혹은 그것이 지난 몇 년 간 어떻게 발전해왔는가에 대해 해주실 말이 있나요?

오픈소스는 상당히 까다로운 주제입니다. 먼저 우리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가 분명 이 시대에 일어난 가장 중요한 발명품 중 하나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지구상에서 제일 덩치 큰 기업, 가령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대기업을 완벽하게 자기 조직적인 오픈소스 프로젝트가 사실상 위협할 수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가끔은 단순한 위협 정도가 아니라, 완벽하게 우위에 설 수도 있습니다. 아파치 서버 Apache server 가 서버 시장에 얼마나 깊숙이 침투했는가를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겁니다. 가령, 100% 자원봉사자들로만 이루어진 비상업적인 오픈소스 비행기 프로젝트가 보잉 사를 위협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말이 안되죠. 오픈소스 소프트웨어가 산업의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할 정도로 엄청나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저는 인터뷰어께서 하시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어떤 것에 오픈소스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해서 그것이 비판적이거나 진보적인, 혹은 정치적인 감수성을 지닌 프로젝트다라는 말은 아닙니다. 절대로요. 요즘 같은 시대에 우리는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을 오픈소스화하고 싶어하는 자가 누구인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하지요. 누구일까요? 구글이 원하고 페이스북이 원합니다. 무엇인가를 공개해 가치를 만들어내는 생산 모델과 방식은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공개하는 것이 자신의 삶일 수도 있고, 사회적 네트워크일 수도 있고, 구글의 경우 아무도 손대지 않은 광대한 데이터의 보고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는 양날의 검입니다. 우리는 사례 하나하나를 보다 상세히 분석해야 합니다.

 

최근 오라일리 O’Reilly 와 <메이크>가 받은 DARPA(미국방성 소속 연구기관 – 역주) 기금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그리고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DIY 나 취미 관련 문화가 제도권의 큰 기관과 보조를 같이 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일까요? 혹은 이러한 움직임이 <메이크>의 초심에 어긋난다고 보시나요? 아니면 사실상 원래 그들이 계속 해오던 것과 같은 선상에 있는 걸까요?

저는 별로 놀랄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DARPA 는 운동 초기부터 자금을 지원했어요. 이것에 대해서는 오해가 없어야 합니다. 동시에 저는 위선자가 되고 싶지 않아요. 오라일리가 발간하는 코드 관련 책들은 그야말로 업계 최고입니다. 누구나 인정하는 바이죠. 저 역시 낙타가 그려진 파란색 책을 보고 처음으로 펄 Perl 코드 짜는 법을 배웠고, TCP/IP가 무엇인지도 오라일리를 통해 알았습니다. 오라일리의 책은 독자를 오도하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아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 같아요. 하지만 DARPA 의 기금 건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심도 있는 질문은, 해킹의 정치학, 혹은 코더 Coder 의 정치학은 무엇인가 입니다. 그것이 훨씬 어려운 질문이고, 여기에는 절대 쉬운 답이 없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 엄청난 비난이 쏟아지겠지만, 저는 솔직히 말해 해커들이 정치적으로 순진하거나 중립적이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해커들은 대개의 경우 정치에 무관심합니다. 어나니머스 Anonymous 의 경우 언론의 주목을 많이 받고 있지만 대다수의 해커들과 코더들은 정치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그저 코드 짜는 일이 재미있어서 이 일을 합니다. 멋진 것을 만들고 싶어 할 뿐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정치적으로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을 구성합니다. 사실 좌파 해커라고 해도 실상은 중도 자유주의자거나 좌파 자유지상주의자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아주 소수의 해커들만이 우리가 전통적인 의미에서 진보좌파라고 부르는 자들이지요. 역사적으로一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대략 지난 50 년 간一사이버네틱과 새로운 미디어의 부상이 기술만능주의 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이며 글로벌한 정부 시스템의 출현과 본질적으로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프레드 터너 Fred Turner 를 위시해 여러 학자들이 수많은 글을 남겼습니다. 따라서 더 깊은 곳의 흐름을 살펴본다면 DARPA 와 오라일리 건은 그리 놀랍지 않습니다.

 

그렇군요. DARPA, 그리고 DARPA 를 통해 <메이크>가 추진하고 있는 주요 계획 중 하나는 학교를 통해 해커스페이스 같은 공간을 확장하는 것입니다. 향후 몇 년 간 약 1000 개의 공간을 만드는 게 목표이더군요. 이것과 관련해, 대학 내 해커스페이스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런 공간에 관여하신 적이 있는지요, 혹은 이런 종류의 공간이 대학에 설치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까다로운 질문이군요. 이에 대한 제 견해 역시 일반적이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먼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사회에서 교회 다음으로 가장 보수적인 기관이 대학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전 그게 나쁜 것인지는 잘 모르겠어요(웃음). 대학이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는 대학 시스템과 그 고루한 조직의 어떤 측면을 해체하는 것에 대해서는 쌍수를 들고 환영합니다. 가령, 80 년대와 90 년대에 벌어졌던 ‘교과서 전쟁’(어떤 작가의 작품들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 – 역주)과 교과서 목록의 다양화 요구 같은 것이 그 예이죠. 하지만 저 역시 강단에 서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수업 시간에 전자기기 사용 금지, 노트북 금지, 휴대폰 금지”를 외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그러한 변화가 실상은 대학의 신자유주의화를 교묘히 가리기 위한 위장술이라는 점입니다. “세미나를 기업가정신 양성을 위한 실험실로 탈바꿈하자”라는 생각인데, 저는 이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기업가정신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지만, 경영대학이 아닌 나머지 분야, 특히 교양학부와 인문학부는 교육의 목적이 다른 데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볼 때 저는 상당히 전통적이고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 말과 더불어 하나 덧붙이고 싶은 말은, 오늘날 현대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외국어 하나와 컴퓨터 언어 하나 정도는 알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코드 짜는 법을 배우되 플라톤도 읽고, 가능하면 이 두 개의 영역을 한 번 융합해보는 건 어떨까요.

 

지금 하시는 비평적 작업 critical work 과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정의하는 비판이론 critical theory 의 차이에 대해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다시 말해 제가 정확히 여쭤보고 싶은 것은, 비평적 만들기라는 용어가 적절한지, 혹시 지나치게 학구적인 것은 아닌지,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들리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다른 말로 바꾸는 것이 나을 것인지 등의 질문입니다. 비평적 만들기라는 용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리고 이대로 가도 괜찮다고 생각하시는지, 아니면 다른 용어로 바꾸는 게 낫다고 보시는지요?

저는 ‘비평적’이라는 단어가 좋은 용어라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이름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아무 내용 없는 속 빈 강정이 될 수도 있고 특정한 브랜드로 화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종류의 프로젝트를 묘사하고자 ‘비평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소프트웨어에 대한 비평적 연구일 수도 있고, 전술적 미디어 혹은 코드의 정치학에 대한 흥미일 수도 있지요.
비평 critique 의 기원에 대해 살펴보지요. 이 단어의 기원은 기본적으로 두 개라 할 수 있는데 하나는 칸트가, 다른 하나는 마르크스가 사용했습니다. 칸트가 사용한 비평의 개념은 도그마의 거부와 관련이 있습니다. 자기이해에 대한 비교조주의적인 관심, 지식의 자아성찰적인 측면, 외부적 잣대에 기대지 않고(가령, 도그마에 기대지 않고)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지식의 능력 등. 칸트의 유산은 우리의 근대적 경험 전체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마르크스의 비평 개념은 이와 유사하지만 약간 다릅니다. 마르크스의 개념 역시 비교조주의적이고, 자아성찰적이고, 근대적인 태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개념은 다소 심심하고, 현세적이며, 비초월적입니다. 물론 마르크스의 맥락 내에서도 비평은 논쟁을 원동력으로 삼습니다. 적대감에 의해 움직이지요. 언제나 상대방과 반대되는 위치에 있는 변증법적 관계이니까요.
마르크스의 비평은 입장을 취하는 것과 관련 있습니다. 가령 위키피디아를 생각해봅시다. 위키피디아는 그것과 정반대의 예라고 할 수 있겠네요. 위키피디아에는 비평하는 문장이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위키피디아의 중립성 원칙 때문입니다. 위키피디아는 합당한 이유 하에 우리가 비평이라고 알고 있는 것을 금하는 아주 구체적인 편집 가이드라인을 갖고 있습니다. 비평이란 특정한 입장을 취하고, 이를 두둔하고, 어떤 것은 반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역동 혹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지요.
그러니 하신 질문에 답해보자면, 저는 물론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이론의 유산에 큰 관심을 갖고 있고, 그런 종류의 방법론이나 접근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제가 하려는 작업 중에는 비판이론의 유산을 가져오ᅡ(여기에 대륙철학의 요소를 조금 가미하여) 그것이 당대의 질문, 특히 디지털 미디어와 관련된 질문과 연계가 되는지, 혹은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는지 등을 알아보는 것도 있습니다.

 

앤서니 던 Anthony Dunne 과 피오나 라비 Fiona Raby 가 정립한 비평적 디자인 Critical Design 의 개념에서는 어떤 것을 취할 수 있을까요?

비평적 디자인이라는 말은 조금 우스워 보입니다. 디자이너들은 워낙 이름 붙이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이고, 이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디자인은 처음부터 비평적 과정입니다. 디자인 프로세스라고 불리는 것이 결국 그것이죠. 디자인은 아이디어를 계속해서 논의하고, 모양을 달리해보고, 조율해보고, 여러 개의 버전을 만들어보는 반복적인 과정입니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디자이너다”라고 부르는 이유지요.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큐레이터이고, DJ 고, 디자이너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한 세기 전만 해도 주류적 삶의 바깥에 위치하던 비평이 오늘날에는 완전히 밀착해 있다는 개념을 우리는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렇기 때문에 어느 날은 소위 비평적 디자인 프로젝트를 하던 디자이너가 다음 날에는 IKEA 프로젝트를 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정상적인 일입니다.

 

최근의 프로젝트, 그릅, 방향, 주제, 흐름 중 만들기운동이나 DIY 문화 측면에서 흥미로운 것은 무엇이었나요? 최근에 접하신 것 중 예상치 못하게 도발적이거나 관심을 끌었던 것이 있습니까?

글쎄요, 흐름에 뒤쳐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노력은 합니다만, 우선 제가 하드웨어에 밝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겠네요. 제가 피지컬 컴퓨팅에 익숙하지 않은 관계로, 3D 프린팅, 마이크로칩 코딩, 아두이노와 같은 최근의 흥미로운 흐름에는 직접 관여해볼 수가 없었습니다.
재미있는 프로젝트의 경우, 저의 성배는 여전히 애드 혹 네트워크 Ad Hoc Network 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일단 많은 수의 노트북과 휴대전화를 동원해 애드 혹 네트워크가 제대로 실행만 될 수 있다면 어느 순간에 기술과 어울림의 양상에 거대한 변화가 도래할 것입니다. 가령, 점거운동ᄋccupy Movement이 트윗, 리트윗의 ‘트위터 혁명’(애초에 굉장히 문제적인 주장이기는 하지만!)이 아니었다면, 그 대신 완벽한 애드 혹 네트워크가 작동했다면 어땠을까요. 상황은 매우 달랐을 것입니다. 이 점이 제가 매우 흥미롭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비트토렌트 Bittorrent 가 파일 전송의 양상을 완전히 바꾼 것처럼 애드 혹 네트워크 역시 거대한 변화를 야기할 것입니다.
질문하신 것에 대한 직접적인 답은 되지 않지만 저는 이것이 DIY 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래에서 위로 확산되는 풀뿌리 운동의 정신을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죠. 우리에게는 중추가 필요 없습니다. 정보의 중추가 필요 없습니다. 애드 혹 네트워크가 있다면 기기의 전원을 그저 켜는 것만으로 중추와 풀뿌리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침 점령운동 애기를 꺼내주서서 반갑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점령운동이 <메이크>의 탈정치적이고 가족 친화적인 톤과 명확히 대비되기 때문입니다. 점령운동을 비롯한 여러 정치적이고 논쟁적인 일들을 통해 소위 DIY 문화라는 영역 내에서 흥미로운 일들이 많이 발생했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DIY 문화를 탈정치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조금 이상해 보이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데 <메이크>의 비전 선언문 같은 일부 글을 보면, 메이커 운동을 비정치적 운동으로 규정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는 해킹적 요소를 제거하는 것 아닐까요? 해킹에서 만들기 요소만을 추출하거나, 만들기에서 해커 윤리라는 해킹 부분을 제거해 불순한 부분을 살균시키는 것이거나. 디즈니화한 것은 아니지만 이는 분명 메이커 운동을 가정 친화적인 것으로 만드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제 생각에 이런 전략은 어떤 면에서 메이커 운동이 널리 확산되고 대중적 인기를 누릴 수 있게 된 핵심적 이유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너무나 풍부하고 흥미로운 평크의 미학, 해커의 미학을 상당부분 잃어버린 것도 사실입니다.

지금 중요한 지적을 해주신 것 같습니다. 가령 1960 년대 이후의 미학적·정치적 기술들 및 이것이 주류에 반기를 드는 반체제적, 심지어 반사회적인 행동을 어떻게 구성했는가에 대해 역사사회학적인 관점에서 고찰할 수도 있겠죠. 그런 다음 그런 기술들의 기원을 추적해 한때는 다소 급진적이거나 반체제적이었던 것이 어떻게 정상성을 획득했는가에 대해 알아볼 수도 있고요. 심지어 특정 기술이 어떤 경위를 거쳐 반대편을 위해 복무하게 됐는지도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입니다, 그 주제에 대한 좋은 자료는 레이첼 메인스 Rachel Maines 의 글이 아닐까 싶은데요. 읽어보셨는지 모르겠지만 레이첼 메인스는 그와 관련해, 한때 노동지향적이었던 기술과 관행들이 쾌락을 위해 동원되었으며, 그것이 어떤 과정을 통해 쾌락 지향적인 유흥으로 변형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합니다.

욕망의 지위가 어떻게 변했는지 생각해보죠. 1970 년대에 들뢰즈와 가타리는 욕망을 급진적이고 해방적인 역량이라고 말했습니다. 상황 주의자 인터내셔널 역시 그러하 구요.
하지만 요즘 페이스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생각해보세요. 그것은 활동성, 정서성, 수행성이라는 생산 양식에 완벽히 들어맞습니다. 1990 년대 초반에는 주디스 버틀러가 급진적 사상이었지만 현재는 페이스북의 비즈니스 모델에 완전히 흡수되었어요. 지난 2,30 년간 굉장히 많은 것들이 변한 것이죠.
상호작용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봅시다. 만일 누군가 1960 년대에 인터액티브 미디어에 대해 얘기를 했다면 그는 급진적인 사람입니다. 인터액티브하다는 것은 미디어가 양방향이어야 한다는 소리인데, 이 말은 결국 방송 모델이 아니라는 뜻이거든요. 미디어는 쌍방향이어야 한다, 라고 당시 인터액티비티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는 본질적으로 사람 편에 선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인터액티비티는 기껏해야 완벽하게 정상적인 개념이고, 최악의 경우에는 조금 사악하게까지 보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구글이 저와 상호작용하지 말았으면 할 때도 굳이 상호작용 하는 것이 달갑지 않습니다. 지메일이 제가 쓰는 이메일과 상호작용하는 것도 마찬가지구요.
사실 리믹스 문화에 대해서도 똑같은 얘기를 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초기 실험 영화와 비디오 프로젝트들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굉장히 놀랍게도 1980 년대 MTV 화면을 보는 것 같았어요. 완벽하게 똑같은 테크닉에, 엄청나게 빠른 편집 등등. 그런 것이 역사의 희한한 순환이죠. 어느 순간에는 마법 같고, 비평적이고, 심지어 반사회적이었던 것이 한 세기만 지나면 정상적이고 심지어 주류가 되어있는.

 

DIY 라는 용어가 현대에 사용되는 양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마크 프라우엔펠더 Mark Frauenfelder 나 매류 크로포드 Matthew Crawford 와 같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방식이요. DIY 라는 말이 어떻게 변해왔고, 현재 위치는 어떠하며, 기원은 무엇인가 등에 대해 의견이 있으신지요. 이 질문을 하는 이유는, ‘DIY’라는 말이 목재 사러 홈디포 Home Depot 에 간다는 말부터 아두이노를 프로그래밍한다는 말까지 온갖 것들을 아우르기 때문입니다. 이 용어를 최대한 잘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현재 뉴욕에서는 옥상에 정원을 꾸미는 일이 유행입니다. 옥상이 굉장히 많은데 비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부모님이 1970 년대에 귀농을 하셔서 저는 오리건 주의 농장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니 저는 어느 정도 DIY 정신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도 가능하다면 다시 뒷마당에 닭장을 짓고 싶어요!
앞서 얘기했듯이, 저는 우리가 매우 부유한 나라이지만 동시에 가난한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인가 만들 때조차 실은 만드는 것의 핵심을 놓치고 있기 때문이죠. 그 핵심이 물리적인 지식일 수도, 영적인 지식일 수도 있습니다. 방금 크로포드를 언급하셨는데, 다른 사람(공예가에 대한 리처드 세넷 Richard Sennett 의 책 등)들에 대해 논의할 수도 있습니다. 현재 대륙철학에서 많이들 얘기하는 것이 목공입니다. 농담이 아니에요. 도구는 현재 매우 주목 받는 아이템입니다. Etsy(핸드메이드 전문 쇼핑몰 – 역주)에 대해서도 얘기했는데, 심지어 음악계에서도 DIY 핸드메이드 정신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을 볼 수 있습니다. 10 년, 20 년 전에는 Sub Pop 같은 소규모 레이블에서 음반을 내는 것이 쿨한 정신의 정점이었다면 현재는 자기 손으로 직접 제작, 발매하는 것이 더욱 멋있는 일이 되었습니다.

 

맞습니다. 카세트나 레코드 판 역시 붐이죠…… 레코드판에 녹음해 직접 발매하거나.

네. 저는 이런 현상이 재미있어요. 문화의 모든 부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일반적으로 좋은 일이죠. 음악이건 리눅스건 점령운동이건. 바람직한 발전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현상을 좀 더 넓은 맥락에서 규정할 필요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낭만주의에 절대 질리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절대 흥미를 잃지 않는 기본적인 현상학이 있지요. 제 말은, 사람들은 언제나 진정성, 세상에 제대로 존재하고 있다는 감각을 갈구한다는 뜻입니다. 사회적 관계가 와해되어 인간들이 고립되고 상품화 되어가면, 사람들은 보다 진정성 있고 진지한 존재 상태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을 보일 것입니다. 이는 소크라테스 때부터 시작된 움직임이고, 그 뒤로도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있어요. 현상학과 낭만주의는 어쩌면 가장 최신의 상징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것이 방금 하신 질문, 즉 핸드메이드로의 회구ᅵ, 물건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고자 하는 흐름, 그리고 그 물건이 확산됨에 따라 친구들이나 사람들과 보다 진중한 관계를 맺고자 하는 욕구들을 하나의 맥락으로 묶어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봅니다. 저는 목공을 좋아해서 여유가 있을 때 가구를 만둡니다. 그래서 왜 사람들이 이렇게 느끼는지 이해가 돼요.

 

저는 그 이유 중 하나가 그저 단순하게, 사람들이 월마트에서 물건을 사들이는 것에 그만 질려서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할아버지가 직접 손으로 깎아주신 숨가락 같은 것을 다시 사용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저는 핸드메이드 문화 때 우리가 향유했던 진정한 의미의 핸드메이드, 혹은 그 정서가 것든 물건을 그대로 복제하는 것은 매우 어렵지 않나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컴퓨터에 기반한 것이면 어렵다는 말씀이신가요?
글쎄요, 그것이 과연 컴퓨터에 기반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좋은 것 같습니다. 가령 소프트웨어를 통해 정서를 가미한 인스타그램처럼 소프트웨어에 정서를 복제한 시도도 보이는데요, 하지만 실체가 있는 물체의 무게는 소프트웨어를 통한 대체가 훨씬 어렵지 않을까요?
미디어는 언제나 그 역할을 담당합니다. 우리는 미디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죠. “쯧쯧, 이런 것들이 현대 생활의 비인간적인 측면들이야/’ 하면서요. 하지만 미디어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 잘 살펴보세요. 지금 생각나는 것은 앤티앨리어싱 anti-aliasing 기술이네요. 이 기술의 발명으로 이미지에 부드럽고 진짜 같은 질감이 부여됐죠. 혹은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낭만주의의 뒷면은 순진한 감상주의거나 향수이니까요. 그런데 그것이 함정입니다. 낭만주의 자체는 물론 하나의 이데올로기이고 우리는 이를 인지해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저기 나타나는 이러한 소소한 향수가 너무 좋아요. 사람들은 이제 CD에 향수를 느껍니다. MP3 는 압축을 해야 하는 반면 CD 는 보다 깊고 풍부한 소리 스펙트럼을 갖고 있거든요. 앞서 언급하셨듯이 사람들은 이제 레코드판, 혹은 레코드판에 바늘을 올려놓았을 때 들리는 지지직 소리에 향수를 느껍니다. 그러한 미디어 인공물들이 보다 즉각적인 진짜 경험의 지표가 되어 되돌아옵니다.

 

맞습니다. 혹시 DIY 문화, 만들기, 비평적 만들기 혹은 핸드메이드 공예와 관련해 읽어몰 만한 책들을 추천해주시겠습니까? 앞서 세넷과 크로포드를 비롯한 몇몇 작가들을 소개해주셨죠. 추가해주실 만한 저작이 있을까요? 혹은 사람들이 더 깊게 읽어봐야 할 책이나 작가로는 누가 있을까요?

초기부터 귀농운동에 이르기까지 오래된 좋은 히피 책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혼자 집 짓는 방법부터 염소 키우기에 대한 책 등등이요.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아직도 염소떼가 풀 뜯고 돌아다니며 길을 내는 광경을 몰 수 있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여전히 염소떼를 “몰고 있는” 사람들도 보이죠.

(웃음) 현상학과 관련해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는 건축가인 크리스토퍼 알렉산더 Christopher Alexander 입니다. 창조와 디자인의 즉각성에 관한 한 알렉산더는 전설적인 인물이죠. 하지만 보다 최근의 인물을 들어보자면 제 영웅은 히어트 로빙크 Geert Lovink 입니다. 아마 인터뷰어님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으리라 생각되는데요. 특히 아딜크노 Adilkno 라는 가명 하에 공동집필한 그의 초기작 미디어 아카이브 Media Archive 는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 주제에 대해 굉장히 오랫동안 글을 써왔고, 제가 아는 그 누구보다도 더욱 깊고 섬세하게 비평적 미디어 관행을 사유해온 사람입니다. 그의 저작이 정말 위대한 이유는 그가 두 개의 전형적인 진영 중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해킹에 열광하는 컴퓨터 괴짜들이어서 대개 찬성하던가, 특허권이 있는 비즈니스 세계에 속해 (이익에 해가 될 경우) 반대하거나 두 중에 하나거든요. 하지만 로빙크와 같은 사람, 혹은 매튜 풀러Matthew Fuller의 저작이나 티지아나 테라노바Tiziana Terranova, 예술 창작 집단 크리티컬 아트 앙상블Critical Art Ensemble 등은 오늘날 우리 같은 많은 사람들에게 굉장한 영향을 주고 있지요. 그런 종류의 작업은 분명 저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읽을 때마다 점점 좋아지는 또 다른 책으로는 맥킨지 와크 McKenzie Wark 의 저서 해커 메니페스토 Hacker Manifesto 입니다. 기 드보르와 들뢰즈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은 책이죠. 디지털 미디어와 디지털 문화에 대한 몇 안 되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1990 년대 웹 붐이 일어난 이후 확연히 눈에 띄는 소수의 책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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