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을 해킹하다 – 해커스페이스의 과거, 현재, 가능성에 대한 비판적 고찰 / 그렌츠푸트너 & 슈나이더

Johannes Grenzfurthner and Frank Apunkt Schneider. 2012. “Hacking the spaces.” Garnet Hertz ed. Critical Making. HISTORY.

번역
4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 만들자 마라톤을 위한 읽기꾸러미 (2013.11.01) http://apap.or.kr/making_marathon
기획: 만들자연구실 디렉터 최태윤, 공원도서관 디렉터 길예경
편집: 길예경, 최태윤
옮김: 김정은

“공간을 해킹한다”는 자율적인 공동체의 열린 공간인 해커스페이스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을 그린다. 모노크롬은 이 글에서 현재의 모순과 한계에 대해 분석한 후 해커스페이스를 더 나은 공간으로 바꾸고자 제안한다. (최태윤)

 

 

공간을 해킹하다 – 해커스페이스의 과거, 현재, 가능성에 대한 비판적 고찰

요하네스 그렌츠푸트너 Johannes Grenzfurthner
프랑크 아푼크트 슈나이더 Frank Apunkt Schneider

 

http://www.monochrom.at/hacking-the-spaces의 허가 하에 다시 게재함.

 

해커스페이스 1 / 역사

해커스페이스의 역사는 반문화운동의 기세가 막 왕성해지고 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회적·정치적·경제적·생태적 관계 방식을 새롭게 구축하려는 히피들의 시도 이후, 살고 노동하기 위한 새로운 공간 구축과 관련해 대략 10 년 간 무수한 실험이 진행되었다. 이 공간은, 유치원부터 묘지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의 공간을 모조리 획일화하고 자신의 가부장적이고 경제적인 질서를 재생산하려는 부르주아 사회의 단일화된 지배 방식으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키고 구출하기 위한 일종의 틈새였다.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 목적, 운영 모드는 크게 봤을 때 결국 “사람을 소외시키고” 인간의 기본 욕구와 관계를 통제하고 자기 입맛대로 바꾸는 것인데 오픈스페이스 Open Space 를 구축한다는 것은 결국 이 자본주의 사회(동구권의 경우는 독재적 공산주으ᅵ)에 대항하겠다는 의사 표명이었다. 이리하여 1960 년대의 실패한 저항은 일상에 편재한 부르주아적 라이프스타일의 그늘 속에서 살아남아 점차 퍼져나갔다. 그리고 꿈을 현실화하고 현실성을 되찾으라는 처량한 말들과 모호하고 환각적인 꿈 속에서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생겨났다. 이런 전환은 히피들의 거시정치적인 꿈이 완벽하게 스러졌기 때문에(사이키델릭 팝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일렉트릭 프룬스 The Electric Prunes’의 ‘지난 밤에는 너무 많은 꿈을 꾸었어 I had too much to dream last night’ 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히피들은 그저 포스터를 붙이고, 팝송을 부르고, 마약 판타지에 동참하는 것만으로는 사회적, 정치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강하디 강한 현실 세계는 입으로만 변화를 외쳐대는 한 무리의 추잡한 부르주아 낙오자들에게 전혀 곁을 내주지 않았다. 실제 세계의 자본주의적 토대는 지나치게 효과적이어서 진정한 변화가 일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1972 년 모든 것이 끝났을 때, 시스템에 투항하여 그 흐름에 합류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고 미시정치적 전술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구세계를 신세계로 전환하려는 노력 대신 사람들은 구세계 내에 자그마한 신세계들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들이 세운 오픈스페이스 내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삶의 방식, 노동 방식, 심지어 사랑하는 방식 등을 함께 고민하고 시도했다. 정치운동의 역사적 발전 및 정치운동이 공간이나 지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령 1969년에 일어난 학생저항운동은 빼앗긴 공간을 되찾고 도시의 미로를 전용해 기존과는 다른 심리지리를 창출하자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다. 이와 유사하게, 1970년대 후반에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고 이후 독일어권 국가와 네덜란드에 영향을 준 자율운동 autonomia movement 역시 자치적인 청소년 센터 확보이든 해적 라디오 전파의 도용이든, 결국은 공간의 전용에 관한 운동이었다. 결국 첫 번째 해커스페이스는 주택불법점거, 대안카페, 농업협동조합, 공동운영 비즈니스, 공동체, 비권위적인 아동보호센터 등의 반문화적 지형도에 가장 일치한다. 이 모든 것들이 부르주아 사회의 암흑 중심부에 탄탄한 대안 라이프스타일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해커스페이스 2 / 현재

해커스페이스는 사람들이 편하게 오가며 일할 수 있는 느긋하고, 멋지고, 비억압적인 공간을 제공했다(물론 자본주의사회에 편입돼 있는 장소나 환경도 느긋하고, 멋지고, 비억압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사회학 용어인 ‘제 3 공간,은 공간을 사는 곳과 노동하는 곳만으로 구분하는 부르주아의 이분법적 구조를 타개하는 장소를 의미한다(더불어 여가활동을 위한 공간). 제 3 공간은 그러한 이분법적 구조를 통해 형성된 라이프스타일을 거부하는 통합적 방식을 의미한다. 이는 가령 기술적 문제를 해결할 때도 협력적이고 비억압적인 방법으로 접근한다는 것이고 이런 과정을 통해 새롭고 혁신적인 솔루션이 도출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바로 이때, 철학자 아도르노 Adorno 의 ‘잘못된 삶 Wrong Life’ 역시 슬그머니 발을 들일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적응력이 고도로 높은 독립체다. 따라서 대안적인 공간, 대안적인 삶의 방식에서 나온 흥미로운 아이디어들이 쥐어짜지고 마케팅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이런 ‘인디’ 운동의 결과물 중 어떤 구조적 특징들은 그렇게 돌연 찬사를 받고, 자본주의 개발 실험실에 응용되거나, 그대로 ‘복사-붙이기’ 되어버렸다. 이러한 특징들은 1970 년대 후반, 부르주아 사회가 반문화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경험을 활용해 스스로를 업데이트하고 재설정하는 트렌드와 잘 맞아떨어졌다. 주류는 반문화 프로젝트에서 확보한 지식을 쏠어 모아 그것을 이용했다. 반대 목소리를 정상화하기. 오 예. 결국 60 년대 저항과 그 이후의 모든 미시적 저항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일종의 기분전환으로 소비되고 말았다. 언제나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은 체제의 전반적인 진화와 완성도에 장애가 되는 구식의 억압적 특징들을 제거하고 싶어한다. 예를 들어 에코자본주의가 유행했고, 이는 자본주의의 ‘착한 부/ 자본주의의 ‘좋은 느낌,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했다. 오늘날 해커스페이스는 초기와는 다른 방식으로 기능한다. 첫 번째 해커스페이스가 형성되었을 때는 ‘우리’(저항하는 사람들)와 ‘그들’(통제하는 사람들) 간의 경계가 언제나 뚜렷했다(‘적대관계,). 부르주아의 전형적인 운영 체제 내에서 살거나 일하기 싫었던 사람들은 상당히 합당한 이유를 들어 그 제도의 이데올로기적이고 정치적인 프로젝트의 일부가 되기를 거부했다. 당시 공간의 타자성을 결정짓는 것은 냉전시대의 이분법에 기초한 부르주아 주류 문화의 일관성이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공간들은 국가도 아니고 자유무역 자본주의도 아닌 다른 종류의 제 3 공간이었다. 그리고 구조적으로나 이데올로기적으로 그들과 다르다는 점은 중요한 정치적 선언이자 입장이었다. 주류와 언더그라운드로 쉽게 구별되는 사회에서는, 언더그라운드 내의 오픈스페이스에서 행해지는 모든 활동이 잘못된 방향에서 벗어나는 움직임으로 간주되었다. 대안적 구조를 개인이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옳은 편에 섰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냉전 후 새롭게 재편된 사회 질서는 해커스페이스의 위치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한편으로는 더욱 억압적이고 강해지는 동시에 시스템은 (영리하게도!) 다른 것을 관용하는 법을 학습했고 새로운 것이 생겨나는 곳은 언제나 정상성의 가장자리라는 점을 파악했다. 은밀히 숨어있는 문화를 쥐어짜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이전에 보여줬던 반문화적 공간에 대한 불관용이나 가끔은 폭압적이기까지 했던 억압은 오히려 그러한 공간을 강하게 만들고, 그 필요성을 더욱 부각시킬 뿐이었다(적어도 그런 공간을 다 쏠어버리지 못한 사회에서는). 그리하여 대안적인 삶의 방식은 오래되고, 지루하고, 보수적이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재의 부르주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는 부분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역할로 아름답게 포장되었다. 기술적(그리고 미학적) 문제의 새로운 해결 방식은 언더그라운드에서 탄생했고 부르주아의 스카우 터들은 그런 흐름을 면밀히 주시하다가 이런 저런 것들을 발굴했다. 이는 1990 년대 소위 얼터너티브 록 계에 생긴 일과 유사하다. 대안적인 주류의 탄생! 한편, 1990 년대는 자유 민주주의가 승리를 거둔 시대로서, 슬라보예 지젝 Slavoj Zizek 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89 년 11 월 9 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행복한 1990 년대’가 시작되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Francis Fukuyama 에 따르면 원칙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의 승리였다. 대개 이 시대는 9/11 사태로 끝났다고들 보는데, 유토피아는 아무래도 두 번 죽어야만 하는 것 같다. 자유 민주적인 정치적 유토피아가 9/11 을 끝으로몰락했어도 글로벌 시장 자본주의라는 경제적 유토피아는 건재했으며, 이 경제적 유토피아는 이제서야 종말을 고했다/’ 그러니 컴퓨터 괴짜들 geeks and nerds 이 자유 민주주의의 정치적 형태와 경제적 형태가 모두 죽어가는 것을 빤히 지켜보면서도 이미 실패한 이데올로기인 자유 민주주의의 옹호자로 변신한다는 것은 매우 아이러니한 일이다. 냉전사회의 정치적 경계가 사라지자 해커스페이스는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변하기도 했다. 정치적 의제는 개별적인 문제 속에 묻혀버리고, 기술에 눈밝은 괴짜들은 공격적이지 않고 무서울 것 없는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 곳은 시장의 공격성이 유예된 곳이며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기술적이고 창의적인 문제와 도전들을 예의 바르게 토론할 수 있는 곳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정치적 접근법은 괴짜스러운 소규모 워크샵 낙원들 사이에서 자연히 소멸돼 버렸다. 미시 정치학은 자본주의의 불가역적인 흐름 속에서 분해돼버린 거시 정치학 프로젝트들만큼이나 규모나 범위 면에서 대대적으로 실패했다. 혁명(혹은 그런 종류)을 일으킨다는 생각은 깔끔한 개혁론으로 순하게 길들여졌고, 눈 앞에 놓인 유일한 혁명은 인터넷 기술의 준 혁명과 소설 웹의 발아뿐이었다. 예전의 정치적 의제가 부재한 상태에서 해커스페이스는 더 이상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작은 장소로 변모했다. 이런 상황은, 합법화되어 부르주아의 신흥 하우징 프로젝트로 변신한 주택불법점거의 몰락에 비견될만하다. 이제 불법점거주택은 쿨한 도시 보헤미안들이 살며 예술과 언더그라운드, IT 비즈니스와 광고 에이전시를 착실하게 오가는 장소가 되었다. 오늘날의 모든 해커스페이스가 이런 것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대부분 동일한 길을 걸어왔음을 주목해야 한다. 또한 상당히 오랜 기간 거시정치적 전략이 해커스페이스에서 벌어지는 모든 활동에 내재적 차별성을 부여했던 것과는 달리 현재는 이것이 사라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결핍 때문에 해커스페이스는 더 이상 보다 폭넓은 범위를 아우르며 정치성을 띄거나 형성되지 못한다. 이는 결국 우리가 무엇을 하건 해커스페이스 공동체는 위축된 채로 남아있을 것임을 의미한다. 인적자원을 배양하는 영양액 이상의 기능은 하지 못하는 것이다(소일렌트 구글은 사람으로 만든 거야! – 영화 ‘소일렌트 그린’의 대사 패러디. 대체식품인 소일렌트 그린이 인육으로 만든 것이었다는 대사를 패러디함-역주)

 

해커 스페이스 3 / 미래

그렇다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인가? 사실 반대할 거리를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감시 같은 주제는 단박에 떠오르지 않는가. ‘안티’라는 접두사를 붙이는 것은 일도 아니다. 아예 룰 76 번(만화나 비디오 게임에 나오는 남자 캐릭터는 예외 없이 인터넷 어딘가에 여자 버전이 존재한다는 인터넷 룰 75 을 패러디 – 역주)을 만들어보자. ‘어떤 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한, 그것에 대해 반대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 단순하다. 부르주아 사회의 역사상 지금처럼 모든 것이 엉망진창인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해커스페이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 가운데 한 가지 빠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부르주아 사회가 어떤 곳이며, 그 사회 내에서 오픈스페이스를 구축하고 운영하는 우리는 무엇을 공격해야 하는가에 대한 간결한 이론이다. 우리가 공유하는 매력적인 대안들은 그러한 이론에 기반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첨단 도구를 만들고, 세계를 무대로 네트워킹 하고, 프로그램 기술과 과학 기술을 활용하는 우리의 일상에 혁명적인 아우라를 덧입혀줄 정치적 의제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의 역사뿐 아니라 오래 전에 도입된 정치적 접근법과 정치적 욕구, 그리고 여전히 존재하지만 현재 숨어 있는 정치성에 대한 역사를 보다 명쾌하게 이해하고 의식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 출발점으로서 우리는 해커스페이스 내에 워크숍을 열어 정치, 역사 및 우리가 삶으로 다시 불러내야 할 것들에 대해 배웠으면 한다. 이론은 세상을 분석하고 해체하기 위한 일종의 연장세트다. 더불어 우리는 오늘날 해커스페이스가 ‘기기를 직접 만드는데 열광하는 백인남성 괴짜 집단’이라는 특정 세력의 ‘자비로운’ 통제 하에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이들이 형성하는 자기들만의 관행이 해커스페이스 전체의 내용을 결정짓는 형국이다(미국의 어떤 지역 내 해커스페이스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나 라틴계 구성원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은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여기서 유럽인 특유의 잘난체는 삼가고 싶다. 우리는 유럽의 참 다문화적인’ 해커씬을 잘 들여다보며 터키나 북아프리카 출신의 해커들이 과연 인구 내 비율만큼 존재하는가를 자문해야 한다. 아니면 그저 여성들의 수를 세 본 다음 그들이 총 구성원의 50%를 차지하는지 살펴보라.) 오늘날의 해커스페이스에는 많은 수의 민족적ᅵ사회적인 그룹들이 배제돼 있다. 이들은 그 공간에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거나, 실제로 그렇게 느끼고 있거나, 혹은 백인남성 괴짜들의 장악에 겁을 먹거나, 그들의 성차별주의적이고 자신들을 배제하는 농담에 겁을 먹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괴짜들 무리와 의사소통하고 협력하기 위한 기술을 갖추지 못했을 수도 있다(적어도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부르주아 사회에서 주변화된 모든 그룹들을 비억압적인 방식으로 포괄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반문화 역사 속 첫 번째 해커스페이스가 의도했던 바다. ‘정치의 본질은 언제나 행동하는 자들을 위해 복무한다’는 마르크스의 사상을 인정한다면, 현재 해커스페이스의 정치학은 백인 중산층 남성들의 이해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런 현실은 변해야 한다. 자, 지금으로서는 여기까지다. 이제 문제 해결에 착수하여, 현재의 다소 지루한 해커스페이스를 전형적인 고ᅵ짜 틀 classical nerd scheme 에 잘 들어맞지 않은 사람들도 모두 향유할 수 있는, 예상치 못한 자유를 생산해내는 화려한 공장으로 변모시킬 수 있다면 어떤 변화가 생겨날는지 기대해보자. 괴짜를 바꾸자. 해커스페이스를 더 나은 공간으로 바꾸자. 당신과, 나와, 인류 전체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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